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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흑백 텔레비젼몇년전 딸아이와 영화 호빗을 본적이 있다.
4DX로 본 그 영화는 내가 어린 시절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세계를 입체적인 영상과 감각으로 보여주었다.
요정과 난쟁이, 마법사의 모험…그들이 사는 몽환적인 세상과 악을 형상화 하면 그렇게 생겼을 것 같은 괴물들..두 시간 반이 넘는 동안 그 속에 나도 같이 살고 모험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생활 속에서 이런 걸 받아들이고 경험하며 사는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축복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현재의 이런 일들이 가능할거라 생각 해 본 적도 없었고 겨우 한 장씩 찍는 카메라 조차도 소풍이나 운동회 졸업식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카메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진기. 그마저도 학교에 입학해서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걸 처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뭔가 움직이는 동영상을 본 다는 것은 꿈같은 행운 이었다.
열 살 때 쯤 친구따라 앞마을에 가서 처음 본 TV. 와~~~~~작은 상자 안에서 사람이 나오고 얘길하고 웃고 싸우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TV가 요술 세계로 보였다.
지금도 TV는 미디어의 선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당시는 흑백TV 였어도 우리한테 환상의 그 자체였다.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에는 전기가 없었는데 강 건너 마을은 서너집 밖에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왜냐면 전봇대가 큰 도로가에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연결 공사만으로 전기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마을은 철거 대상 지역이라 개발 금지령으로 전기 혜택도 받지 못해서 TV를 볼려면 강을 건너 가야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제일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전우”라는 전쟁 드라마였는데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전우를 볼려고 아예 강 건너 마을 주변에서 맴돌며 전쟁놀이를 한다.
머리에는 철모 대용으로 낡은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잘라 그럴싸한 총을 만들어 어깨에 둘러메면 완전 특공대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 했다.
어떤 애는 월남전에 갔다 온 삼촌의 군화를 몰래 신고 나왔는데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군화를 질질 끌며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폼을 잡기도 했다.
소대장은 그중 싸움을 잘하는 아이거나 한 살 많은 형들이 주로 맡았다.
앞장을 서며 “나를 따르라!
…”하고 호령을 하면 동시에 “예!
”하고 복창을 하며 길이 아닌 곳만 골라 풀 숲속을 달리기도 하고 더욱 더 용감함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흙탕물로도 지나가면 그 뒤를 어쩔 수 없이 용감한 척 따라 가야만 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애들은 “ 난 신발 베리머 어머니한테 맞아 죽는기다~~…”하며 대열에서 이탈해 울먹울먹 하면서 합류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에 가지도 못하면서 입에 손가락을 빨고서 구경만 하기도 했다.
특히 여학생이나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면 난리가 났다 “우와!
~~ 용감하고 멋진데~” 라고 한마디 던져 주면 그 순간은 특전사 정예요원이 된 것처럼 오버해서 높은 다리 밑을 뛰어 내리고 바위위로 올라가 밑으로 마구 뛰어 내리기도 했다.
잘못 뛰어내려 발목을 접질러서 주저앉아 우는 애도 있고, 착지를 잘못해서 꼬꾸라져 배를 움켜잡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약함을 안보이려고 태연한척 침을 꿀꺽꿀꺽 삼켜 가면서 뛰어 다니면서 노는 애도 있었다.
“전우” 드라마 방송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TV가 있는 집 주위로 몰려든다.
괜히 주변에서 우리를 좀 봐달라고 대문 앞을 얼쩡대면서 왔다리 갔다리 했다.
어쩌다 주인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때는 이 때다 하고 “저~ 아저씨… 텔레비 좀 보여주면 안되능기요?..” 하고 얼른 옆에 붙으면 아저씨는 “안된다~ 집에 가라!
“ 하고 나무라며 무시해 버린다.
주말만 되면 찐드기 같이 집 앞에 와서 귀찮게 하니 주인도 얼마나 짜증이 났겠는가… 그 집은 도시에서 이사를 온 집이라 우리 마을과는 별로 내통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아주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조르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을 일이다.
들판에서 온갖 장난으로 인해 옷도 엉망이고 씻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얼굴에다 냄새를 풍기는 몰골로 우르르 몰려드니 얼마나 지저분하고 싫었겠는가…그래도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집으로 들어오라 하시며 마루에 우리들을 앉혀놓고 TV를 밖으로 돌려 보여 주셨다.
그 시간대에는 저녁 식사시간 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 때문에 저녁식사를 뒤로 미루기까지 하시고 우리를 배려 해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전우” 드라마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이어지는 광고장면에 얼이 빠져 있었다.
나는 어쩌면 광고음악에 더 솔깃하게 귀가 쫑긋 한 것 같다.
광고 하나하나 할 때 마다 나오는 짧은 노래를 다 따라 부르곤 했다.
다른 애들은 내가 그걸 연습하고 따라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 한번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가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되는 걸로 생각 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애들아 이젠 집으로 가야지.. 우리도 저녁을 먹어야지..”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야!
. 가라!
하잖아..이젠 집에 가자” 하면서 하나둘씩 일어나 대문 밖을 나오며 철없이 투덜투덜 대며 보여준 고마움 보다는 더 못 보게 내쫓는 야박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TV를 본 후 마을입구 강을 건너 집으로 갈때면 “나는 나중에 돈 벌어서 세상에서 제일 큰 테레비를 살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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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너거들 늦게늦게~~~~ 까지 텔레비전 마이마이~~~ 보여 주께 알았쩨?!
~~~..” 하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해가며 또한 전우 드라마 내용에 사로잡혀 선임하사, 소대장, 각자 좋아하는 출연자 캐릭터를 연상하면서 큰소리로 흉내를 내며 따라 하기도 했다.